영화 대부는 느와르, 갱스터, 마피아 영화의 상장이지 블록 버스터 영화 시대의 포문을 연 역대급 영화 중 하나입니다.
근데 여러분, 1972년에 개봉한 대부는 그 당시에는 진짜 아무도 기대 안하고 있었고, 대부의 흥행이 역대급 기적이라는 거 알고 계시나요?
한 마디로 대부는 본의 아니게 갱스터 영화의 상징이 되었고, 예상치 못하게 블록 버스터 영화의 시대를 열어버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대부의 흥행이 그 당시에 왜 기적이었는지, 대부의 기적적인 흥행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대부의 흥행이 기적이었던 첫 번째 이유는 그 당시 신문물이었던 TV의 등장 때문입니다.
1960년대, 1970년대 초 할리우드 영화계는 유명세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1960년대에 대중들에게 보급된 TV 때문인데요. 사람들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보다 집 안에서 편하게 소파에 앉아서 신문물인 TV를 보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게다가 그 당시 할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는 찬밥 신세였습니다.
1965년에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가 대히트 친 것을 보고 같은 제작 팀이 이 영화의 스케일을 블록버스터급으로 올려서 “Julie Andrews”라는 비슷한 영화를 1968년에 출시했는데, 결과는 폭망했습니다.
영화 산업계는 “아 TV 때문에 점점 망하고 있는 극장(theater) 산업처럼 우리도 슬슬 망하는 거 아니냐…ㅜㅜ" 불안감이 더욱 더 커졌습니다.
실제로 1969년, 1970년에 출시한 영화 수가 역대급으로 적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1960년대 1970년대에는 마피아 영화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대부는 마리오 푸조라는 작가의 “대부"라는 책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인데, 이 책이 만들어진 과정이 참 험난했습니다.
일단 마리오 푸조라는 작가는 그당시 40대 후반이었는데 무명에 가까운 작가였습니다. 게다가 도박 중독에, 3천만원의 도박 빚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부" 책의 편집자가 마리오 푸조의 도박 중독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마리오에게 “마피아"에 관한 책을 쓸 걸 제안했는데, 그는 마피아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어서 책을 쓰기 전에 리서치 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써야했다고 합니다.
근데 마리오가 대부를 한 60페이지 정도 썼을 때 이 마피아 이야기가 좀 유명해져서 그 당시 2티어 정도 되는 파라마운트 픽쳐스라는 영화 제작사가 이 책의 내용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파라마운트 픽쳐스는 지금에야 최고의 제작사이지만 그 당시에는 9번째로 큰 제작사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파라마운트 픽쳐스는 무명 작가 마리오에게 인센티브에 따라 최대 “8만달러(한화로 1억원)"를 주는 계약을 체결하는데, 대부의 말도 안되는 흥행으로 70년대 당시 4천억이 넘는 수익을 냈으니, 파라마운트 픽쳐스 회사 역사상 가장 잘한(?) 계약이었다고 합니다.
근데 작가 계약은 어찌저찌 체결했지만 이번엔 “대부"를 제작할 영화 감독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마피아 영화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파라마운트 픽쳐스는 1968년에 당대 최고 스타였던 Kirk Douglas를 주연으로 한 시실리안 마피아 영화 The Brotherhood을 개봉했는데 처참한 성적을 거두고 적자를 봤습니다.
이걸 지켜본 영화 감독들은 비슷한 배경의 대부를 영화로 제작하기 상당히 꺼려했고, 파라마운트는 무명의 감독 프란시스코 코플라에게 연락합니다.
대부의 흥행이 기적이었던 세 번째 이유는 프란시스코 코플라 감독도 처음에 대부를 영화로 만들길 원치 않았고, 파라마운트 픽처스는 알파치노, 말론 브란도를 캐스팅하기를 반대했고 감독에게 너무 심한 간섭을 했다는 점입니다.
일단 프란시스코 코플라는 그 당시 전통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 벗어나 샌프란시스코에서 영화사를 차렸습니다. 그 당시 역시 무명이었던 조지 루카스 감독과 함께 영화사를 차렸는데 잘 안돼서 파산 직전에 놓입니다.
이들의 실패와는 별개로 그 당시 이들은 마음맞는 동료들과 함께 의견을 주고 받고 일을 같이 하는데요. 이들은 바로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브라이언 디 팔마였습니다 ㄷㄷ
어쨌든 조지 루카스는 회사에 돈이 없으니 프란시스코 코플라에게 “야 파라마운트가 해달라는대로 영화 다 만들어주고 돈 받아. 일단 먹고 살아야제 안 그럼 우리 굶어 죽어 ㅜㅠ” 라며 프란시스코를 설득했고 그는 대부 영화 제작에 착수합니다.
근데 파라마운트가 잘 안도와줍니다.
회사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대부의 배경인 1940년대 스타일로 세트장도 안 지어주려고 했고, 배경이 뉴욕인데 뉴욕에서 촬영을 하면 너무 비싸니 훨씬 더 싼 세인트루이스에서 제작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마리오 푸조의 책 “대부"가 점점 인기를 얻고 있어서 어찌 저찌 세트장을 구합니다. 근데 이번엔 캐스트가 문제였습니다.
코플라 감독은 말론 브란도를 무조건 캐스팅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파라마운트 측에서는 그의 성격, 태도, 동료들과의 관계가 너무 안 좋아서 거절했고 그에게 큰 출연료를 줄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말론 브란도는 캐스팅 되었고, 출연료를 진짜 얼마 못받았다고 합니다.
이번엔 알파치노가 문제였습니다.
파라마운트 측은 책에 나오는 마이클 콜리오네의 모습 - 건장하고 키 크고 금발인 잘생긴 남성은 그 당시 딱 맞는 배우였던 Robert Redford가 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책에 묘사된 비주얼만 따지면 로버트가 알파치노보다 더 잘 어울렸습니다. 하지만 코폴라 감독은 알파치노가 해야한다고 조르고 졸라서 결국 회사를 설득시켰습니다.
이제 세트장도 다 만들고 배우들도 다 캐스팅 했는데, 여전히 회사가 말썽이었습니다.
코폴라 감독은 자신이 힘이 없었기 때문에 회사에게 매일 어떤 장면을 찍었는지, 어디서 찍었는지 이런 디테일들을 다 공유해야했습니다.
회사는 여기저기 간섭을 했습니다. “말론 브란도가 너무 웅얼 거린다", “라이트가 너무 어둡다", “이 장면 앵글이 좀 별로다"
하지만 점점 더 회사는 코폴라 감독의 실력을 믿게 됩니다. 특히 마이클 콜리오네, 알파치노가 레스토랑에서 두 명의 적을 마주하는 장면을 보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이 장면은 여태까지도 할리우드 역사에서 가장 멋진 장면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역경을 뚫고 코폴라 감독은 결국 대부를 1972년에 개봉합니다. 그리고 개봉과 함께 초대박이 납니다.
그 당시 70억정도의 예산을 들여서 만들었는데 4천억 넘게 수익을 올렸으니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수 조원대도 넘는 것 같습니다.
상업적인 성공 뿐만 아니라 대부는 훌륭한 연출, 배우들의 미친 연기, 짜임새 있는 스토리 덕분에 여태까지도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역대급 작품을 만들어낸 프란시스코 코폴라 감독을 보면서 무명의 감독이었고 영향력도 없는 영화 제작 환경에서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배우들, 연출진들을 캐스팅하고 대작을 만들어낸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든 환경에서도 뚝심 있게 자신의 스타일을 밀어붙인 코폴라 감독에게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커리어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가진 게 없었어서 잃을 게 없었기에 이러한 대작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그는 말론 브란도같이 까다로운 배우, 그리고 알파치노를 제외하면 당시 무명 배우들을 중요한 역할로 많이 썼는데, 결국 유명한 배우들이 아닌 감독이 생각하기에 적재 적소에 맞는 배우들을 써먹고, 그들이 최대 능력치를 발휘하게끔 잘 도와주는 게 감독의 가장 큰 역할이다 라고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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